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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의역사

차의 개념

동백나무과에 속한 "카멜리아 시네신스"라는 혁명을 가진 차나무에서 난 싹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을 "차"라고 합니다.
이런 차나무에서 난싹을 이용한 각종 제다 방법을 따라 녹차, 백차, 청차, 황차, 홍차, 흑차 등으로 나뉘게 됩니다.
요즘 우리가 우려 마시는 것은 차라고 하고 - 보리차, 모과차, 생강차 등 - 심지어 커피, 주스까지 차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이는 지극히 잘못된 일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차나무의 순 이나 잎을 재료로 해서 만든 것만을 차라고 할 수 있지 그밖의 것은 차라고 할 수 없습니다.

"차"는 대용차와 정통차로 나뉘는데 대용차란 흔히 시중의 다방 가에서 범람하는 커피, 주스, 콜라, 사이다 등의 서구유럽에서 들어온 서양식 댜대용차와 옛부터 우리네 조상들이 즐겨 약초로 달여 마셔 오던 백산차, 박하차, 구기자차, 유자차, 생강차, 모과차, 오가피차, 결명자차, 전통차는 차나무의 어린 싹만으로 만들어진 진짜 차 를 말합니다.
이러한 차는 발효를 시키지 않는 순수한 녹차와 완전발효를 시키는 홍차각 있으며, 부분발효를 시키는 백차, 청차, 황차와 같은 부분발효차와 후발효를 시키는 흑차가 있습니다.

차의전래

"차"의 유래에 관하여는 중국도입설, 인도전래설, 자생설 등의 세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중국도입설은 흥덕왕3년(828년) 견당사 대렴이 당나에서 차씨를 가져와 지리산 쌍계사와 화엄사일대에 심었다는 삼국가기의 기록에 근거한 설입니다.

이는 그전에도 차를 마셨고 게례등에 차를 사용했었다는 기록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입니다.
인도전래설은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인 인도 야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시집올 때 (48년) 차씨를 가져왔다는 기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위와같은 차의 외래유입설에 반하여 우리차의 자생설이 있습니다. 차나무는 고생대 식물이고 우리나라는 백두산, 울릉도, 한라산 등을 제외하고는 한반도의 거의 대부분이 고생대토양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영, 호남지역의 각지에도 야생토종타가 자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차의 자생설이 훨씬 더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차의 역사

삼국시대이전의 고대로 일컫는 가야시대에 이미 인도로부터 차가 들어왔다는 가능성은 전설을 토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진위성을 따질 수 없지만 전혀부인 할 수 만도 없는 일이다. 설령 그때 차가 들어 왔다하더라도 그것은 일반서민 사회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던 고급 문화로 궁중에서 의식으로 이용하였다.

아마 일반 서민 사회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일반 사회에서는 차의 또 하나의 기능이라 볼 수 있는 약리적 효능을 중요시하여 구기자, 오미자, 마기목, 생강, 칡 등을 그냥 달여서 마셨다. 그리고 백산차가 있었다.
초의스님의 저서 동다송에 보면 장백산중에 식물의 잎을 따서 달여 마셨다는 백산차가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백산차는 석남과의 식물로서 잎으로 차를 만드는데 길림외기에는 이것을 안춘향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위가 있는 깨끗한 곳에 나며 키는 약 한자, 잎은 유엽상이며 미향이 없어 제사에 쓰고 산촌에서는 음료로도 쓴다.
일명 석남차라고도 부른다.
이런 사실을 들추어 보면 고대의 이미 문화적 입장에서 어떤 형태의 차이든 차를 즐겨 마시기를 좋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의풍류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풍류를 알고 즐길 줄 아는 민족이었다.
고운선생은 그의[난랑비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
그 교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에 자세히 실려 있으니, 실은 삼교를 포함하여 군생을 접화하는 것이다.

들어와서는 집에서 효도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의 뜻과같은 것이요, 무위로 일을 처리하고 말없이 교를 행함은 주주사의 종자와 같은 것이요.
악한 일은 하지 않고 선한 일은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의 교화와 같은 것이다.

물론 도올 김용옥은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에서 [난랑비서]에 나와 있는 충류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시 노래 춤 등으로 멋지게 노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현묘지도와 신도의 동음이의어임을 주장하였다.

이규보(1168~1235) 선생은 6척의 조그만 정자의 네기둥에 바퀴를 달아 밀고 다니며, 산수 좋은곳으로 마음 맞는 친구들과 사회를 열고 술마시며 거문고 타고, 차 끓이는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그의 [사륜정기]에 의하면 그저 놀고먹자는 게 아니엇음을 알 수 있다.

사륜정기
바퀴를 넷으로 한 것은 네 계절을 상징한 것이고 정자를 6척으로 한것은 육기를 상징한 것이다.
두 대들보와 네 기둥을 마련한 것은 임금을 보필하여 정사를 도와 사방의 기중이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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